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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의 고수를 찾아서 <문화일보>

 
호흡모은 一擊  ,  巨松도 바르르
11월 초 충남 계룡산. 하늘은 푸르고 단풍은 타는 듯 붉다. 그 자락에 자리한 신원사(新元寺)를 훑고 지나는 바람은 이미 차가워, 산사(山寺)에 깃든 만추(晩秋)도 깊어만 간다. 절 밑 식당가엔 기인이 하나 기거한다.
‘도(道)’ 닦는 사람이다.

계룡산에 들어온 지 벌써 5년째. 인연이 닿아 ‘기천문(氣天門)’을 익힌 뒤 계룡산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수행은 먼산 오르듯이 하라’. 기천이 이르듯 그는 이제 매일 계룡산에 오른다. 기천문 박사규(54) 문주다.

일출을 보기위해 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계룡산 정상으로 향했다. 앞장 선 문주가 비추는 손바닥 만한 손전등에 의지해 기자, 사진기자가 뒤를 쫓았다. 나이 쉰을 훌쩍 넘긴 문주가 익숙한 산길을 쭉쭉 치고 올랐다.

“묘한 매력이 있어요. 한번 들면 떠나기가 쉽지 않지요. 몇 백년 동안 수양인들이 수도 없이 거쳐간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계룡산 곳곳엔 아직도 수양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아니나 다를까. “움치~움치….” 등산로 옆 바위에 정좌한 도인이 보인다. 몸을 가린 담요 밖으로 얼굴만 빼곡히 내민 채 통 알아듣지 못할 주문을 외고 있었다. 문주는 “토속 신앙인이지. 자시(子時·밤 11시)부터 있었을 거요”란다.

반면 무술 수련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이 불가 승려거나 무속인들이다. 기천문도 정신적인 수련을 강조한다. 이는 기(氣) 수련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문주 말대로 기천은 종교가 아니다. 그는 무도인(武道人)이다. 단지 주먹 지르고, 발차기 해대며 싸움기술 익히기 보다는 정신, 내적 수양을 강조할 뿐이다.

산 중턱쯤에서 문주가 발길을 멈췄다. 뒤쳐진 기자일행을 위해 잠시 쉬기로 한 것. 기자의 질문에 그가 지나간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박 문주는 고등학교 때부터 합기도를 배웠다. 근데 체구가 작은 게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자기보다 큰 사람들이 시비라도 걸어올라치면 시쳇말로 ‘거의 반’ 죽여놨단다. 또 무술 잘한다는 사람 소리만 들으면 찾아가 한바탕 붙어봐야 직성이 풀렸다. 대련 만큼은 적수가 없었다.

그러던 지난 79년, 임자를 만났다. 막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전국합기도대회에서 시범단으로 뛴 직후였다. 서울 약수동에 엄청난 고수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한달음에 달려갔다.

“동자승 같은 외양이었는데, 글쎄 나보다도 몸집이 훨씬 작질 않았겠나. 그 정도라면 한 다섯쯤은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지.”

도장에서 정식 대련이 벌어졌다. 어이가 없었다. 처음 보는 무술에 처절하게 당한 것이다. 상대는 허리에 척 손을 얹고는 태연한 모습이었는데 별안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연비파문(燕飛波紋). 셋이면 독수리도 떨어뜨린다는 돌제비가 독수리를 내리 쫀다는 초식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바람처럼 몸을 돌려 들어오며 연타를 쳐오는데 뒷손이 보이질 않터란다. 몇 차례를 반복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 동자승은 기천을 세상에 처음 알린 1대 문주 박대양(53) 진인. 어릴 적부터 설악산 등지에서 자라며 무술만을 수련한, 그야말로 도인이었다. 박 문주는 20여년간 박 진인으로부터 무술을 사사했다.

처음 3년간은 묵언(默言)했다. 감히 ‘수(手)’ 풀이를 청하지도 못했다. 주먹이 먼저 날라왔다. 감각부터 익힌다. 반복해 두들겨 맞는 사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무술을 배울 수가 없다. 죽도(竹刀)에 맞은 온몸은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일쑤. 강한 것을 먼저 배워야 부드러움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욕심쟁이라고 욕도 많이 먹었지요. 내가 어렵게 한 공부인데 (아무리 제자라도) 쉽게 남에게 줄 수는 없었던 거요. 또 그보다는 몸에 익지 않은 무술을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입산해서야 문하생을 뒀다. 특히 주말이면 사범급 수련생들이 배움을 청하러 계룡산에 들어온다.

문필봉(文筆峰). 정상에 닿자마자 거짓말 같이 해가 오른다. 어둠이 걷히는 사이 문주가 내가신장(內家神掌)을 선다. 일종의 기수련 정공법(靜功法). 천지인(天地人). 사람이 땅의 기운을 받고, 하늘의 기를 호흡하는 것이다. 일출 때가 하루중 기(氣)가 가장 왕성한 때다.

기천은 내가신장에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난다고 한다. 그만큼 기천의 핵심, 정수가 녹아있는 중요동작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하루종일 이 내가신장을 섰다. 동틀 때 시작한 수련이 저녁이 돼서야 끝났는데, 자세를 취하는 사이 발목까지 흙에 묻히곤 했단다.

두 팔을 머리앞으로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펼친 채 다리는 기마식(騎馬式)을 선다. 허리는 바르되 엉덩이를 뒤로 한껏 뺀 자세가 특이하다. 왠지 온몸이 뒤틀린, 불편한 모양세다. 발 뒤꿈치는 밖으로 크게 벌어지게 놓는다. 문주는 그걸 ‘역근(易筋)’이라 불렀다. 내가신장 뒤엔 소도, 범도 등 역근법 동작이자 내공법인 육합단공(六合丹功)이 이어졌다.

기천 역사에도 달마대사가 등장한다. 달마가 장백산(백두산)에 와 산신(山神) 천선녀로부터 역근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무술에서의 역근은 조금 다르다. 단련을 통해 근육을 강하게 만든다는 중국식 수련방법이 역근. 반면 기천은 인간이 취하기 힘든, 즉 관절을 꺾는 자세로 근육에 긴장을 줌으로써 힘을 기르는 것을 역근이라 설명한다.

문주가 이어 검을 들고 운기한다. 다리는 금계독립(金鷄獨立). 한 다리를 무릎위로 들고 선 자세다. 위험천만이다. 문주는 정상 가장자리에 서 있는데 불과 1족장 뒤가 낭떠러지다. 혹여 실족이라도 하면 대형사고가 날 판이다. 기자가 “조심하시라”고 이르자, 문주는 “알고 있다”며 빙긋이 웃는다. 정상에 오르자마자 사진촬영에 들어갔으니 다리가 후들거릴만도 할텐데 그는 한껏 태연하다.

하산길에 믿기 힘든 얘기가 이어졌다. 기천은 본디 ‘산중무술’이다. 1대 문주 박대양은 ‘산사람’이다. 그의 스승이라는 원혜상인도 산에서 살다 산에서 돌아갔다. 그의 나이 160이 넘어서였다. 박 진인이 하산해 적수가 없었다지만 원혜상인은 더 대단했다. 축지법을 썼고 발차기 한번이면 바윗돌도 연탄재처럼 부서져 내렸으며, 쌀 한가마니 정도는 공기돌 다루듯했다. 그러나 원혜상인 이전의 기천 전인은 누군지 알 방도가 없다.

“처음엔 저도 믿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산속 생활을 사부한테 많이 물어도 봤지요. 뾰족한 대답이 없었어요. 하지만 기천을 수련하면서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중요한 것은 믿고 따르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박 문주는 기천은 단군 이래 면면히 전해져온 민족고유의 전통무술이라 했다. 사료를 찾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전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일파를 이룬 한 검도단체 회장과 수벽치기의 고수조차 기천문 출신이라는 주장도 덧붙인다.

몹시 궁금했던 그의 무술을 감상했다.

신원사 앞 공터. 칠보절권(七寶切拳)이다. 걸음이 빠르고 가볍다. 3박자인 3성보(三星步). 공방 의도를 노출시키지 않는 최고의 보법이다. 잰 걸음으로 쳐들어가는 보법도 있다. ‘또르륵보’란다. 두팔을 들어 몸 안으로 휘둘러 치는 동작이 특이하다. 태껸의 활개짓과 닮았다. 손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안으로 말아 쥔 것도 특징. 대풍역수(大風易手) 초식. 앞차기를 날리는가 싶더니 연이어 장을 쳐낸다. 마무리 동작은 한 손을 펴 다른 손 팔목을 냅다 후려치는 동작으로 끝난다. ‘퍽’하고 둔탁한 소리를 낸다.

일보삼권(一步三拳). 한 걸음에 주먹을 세번 내친다. 특이한 것은 허리를 뒤로 크게 꺾는 동작이 불쑥불쑥 나타난다는 점이다. 얼핏 중국무술 ‘취권’ 동작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기천의 위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동작이란 게 문주의 설명. 신체의 ‘반탄력’을 이용, 타격력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허리를 뒤로 젖혔다가는 그 힘으로 튀어나간다. 발차기와 주먹도 모두 여기서 출발된다.

손가락을 벌려 편 채로 안으로 접어 장(掌)을 쳐낸다. 금화장(金花掌). 거송의 밑동을 쳐 솔잎을 떨구어 냈다는 솔장법의 일종. 이런 기예는 기수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몸 안에 내공이 쌓이면 육체적인 힘은 최고 2배까지 위력이 배가된다. 더 중요한 것은 내공법엔 활생(活生)의 묘리가 녹아 있다는 것.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은 물론, 운기를 통해 질병 자가치료도 가능하단다.

“고수요? 그저 수양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기천은 정신을 깨치는 공부인 거지요.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싶은 사람이 찾아오면 그걸로 족합니다. 글쎄요, 계룡산엔 얼마나 더 있을지 아직 모르겠네요…”.

박수균기자 freewill@munhwa.co.kr

182.226.43.150/2014-04-08 19:12:17 작성.